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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위한 변명 (소요유와 제물론)

by JamesLee posted Apr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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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2.jpg

 

 

 

 

 

 

장자를 위한 변명 (소요유와 제물론)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

 

테크노인문학전공 6기 이상만

 

 

 

[본 칼럼은 개인적인 분석 자료일 뿐이며, 학과 수업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장자 내편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노자, 장자 강의를 처음 듣게 되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생각보다깊이 있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도덕경의 구절들은 많은 사상적 영감을 주기에 충분 하였다.

 

 

 

 장자의 경우는 도덕경과는 매우 다르게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동양 철학을 배우지 않은 공학도의 입장에서는 장자의 철학은 동문서답, 조삼모사 같은 말장난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장자의 우화적 표현들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넣거나 문자 그대로 직역하는 여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자신만의 정립된 개념이 없이는 교수님의 말씀은 전혀 이해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서적들과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정답은 아니지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상적 정리를 한 번 하고자 한다.

 

 

1.    큰 의미에서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

 

 춘추전국시대는 시대적으로 산업혁명과 비견될 수 있는 엄청난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역사적으로 상()나라에 이어 주나라가 중국의 주도권을 잡았던 시기로부터 약 500년이 흐른 후였다. 주나라는 상나라와는 다르게 봉건제후국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중앙에서 모든 지방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영주들을 제후국으로 인정하고 지방자치를 하게 한 것이다. 당시의 통신, 상업 교류의 상황으로 볼 때 매우 적절한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나라는 천자의 나라로 군자, 즉 임금의 자손들과 소인,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구분이 있었던 시기였다. 군자와 소인은 초기에는 잘 융합하고 다스려지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전제라고 하는 것이다. 정전을 나누어 주어 소인으로 하여금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고 나라의 밭은 공동 경작하는 시스템이다. 국내 드라마인 육룡이나르샤 에서도 이 정전제 때문에 대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건국하고 세월이 500년 가량 흐르자 점차적으로 과거의 제도가 현재의 생활을 담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철기의 도입으로 인한 농업 생산성의 확대는 부유한 소인을 탄생시켰고 사회 계급과 구조에 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의 길을 도()라 부르며 혼잡한 세상을 바로 세우고자 한 사상가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공자, 노자, 장자와 같은 분들이다.

 

그 중 공자는 인()을 중심으로 사회의 여러가지 개념을 정립하고 나라의 체계를 군자와 소인, 직급과 충효를 강조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다. 노자와 장자는 그와는 반대로 개념화를 구분짓는 불평등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무위의 도()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사상은 추구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 한 시대를 공유하는 사상적 배경은 같다고 보았다.

 

아래의 표를 보면 그것이 더욱 명확하다.

 

 

 

나이

 

논어의 7단계(공자)

 

맹자(참조)

 

장자의 7단계

 

나의 상태

 

1

 

15

 

志學(지학)

 

1. 신인(). 맹자는 1,3,5,7의 홀수로 표현

 

逍遙遊(소요유 ,참 나의 세계, 공간을 잊어버리고, 나와 남을 가르지 말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리지 않는 순간. 이때 참 나가 보인다. 지금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나!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 상태)

 

나를 깨침

 

2

 

 

 

志學(지학)

 

 

 

齊物論(제물론, 참 나의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물상은 같다. 나와 나비는 결국 같다. 참 나는 구분이 없다. 이것과 저것은 참 나의 입장에서는 같다)

 

현상계가 평등

 

3

 

30

 

自立(자립)

 

3. 미인(). 선이 충실하게 갖추어진 사람

 

養生主(양생주, 참 나의 세계에서는 영원하다. 생명의 주인을 배양한다. 육신은 죽어도 정신은 영원하다.)

 

나 자신의 수양

 

4

 

40

 

不惑(불혹)

 

 

 

人間世(인간세, 인간 세상으로 나가는 철학. 천하를 이해하기 위한 것. 나의 인격이 우주를 초월)

 

인간 세상에 가도
조금도 걸림 없다

 

5

 

50

 

知天命(지천명)

 

5. 대인(). 덕이 충실하여서 광명하게 뻗어나오는 사람

 

天德充符(천덕충부, 나의 수양으로인한 덕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

 

하늘 앞에서도
덕이 충만하다.

 

6

 

60

 

耳順(이순)

 

 

 

大宗師(대종사,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가르칠 수 있는 위치

 

7

 

70

 

從心(종심)

 

7. 성인(). 능이 남을 가르치고 교화하여 다스릴 수 있는 사람

 

應帝王(응제왕, 이러한 위치에 오른 사람은 능히 천하의 제왕이 될 수 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경지이다.

 

 

 

 

 

 

위의 표와 같이 공자와 맹자, 장자는 그 사상적 구성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장자 내편의 내용을 잘 보기 바란다. 필자도 생각없이 볼 때는 도대체 소요유가 무엇인지 제물론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7편을 엮어서 보면 결국 제왕이 되기 위한 수양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왕의 도에서 소요유와 제물론을 중시 했을까? 하나씩 풀이를 붙여가며 보도록 하겠다.

 

 

 

 

2.    소요유 (逍遙遊)

 

 소요유의 한자에 서 볼 수 있는 착()3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장자는 운율이 있는 시인이었던 것 같다. 즐겁게 노늬는 모습을 표현 한 것인데 대단히 재미있는 분인듯 하다. 장자는 어찌 하여 가장 중요한 첫장에 그 소요유라는 흥겨운 놀이를 말하고 있을까? 첫 문장부터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명작동화가 펼쳐진다.

 

첫 구절에는 , 붕 이라는 물고기, 새가 나오고 남명으로 가고자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것을 설명하는 다양한 서적에서 모두다 동화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필자가 분석한 바로는 이 것은 우주만물의 운행의 이치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12간지중 자시에서 시작해서 오시에 도달하는 그 6간지를 6월로 표현 한 것 같고 곤과 붕은 하지와 동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뜨거운 기운이 동지에서 시작해서 6절기(6간지)를 거쳐 하지로 도착하고 여기에서 다시 식어서 동지로 돌아가는 운행인 우주운행의 법칙이다. 우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을 인체에 비유해 보자면 단전()에서 6가지 장기를 거쳐 머리의 뇌수(천지)로 올라가는 그 이치를 말하는 것과 같다. 시작부터 우주 운행의 법칙을 인체에 빗대어 설명 하고 있으며, 자기 몸의 운행의 규칙을 알아야 한다고 말 하고 있다. 특히 새가 날아 갈려면 구만리를 채우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것은 그 만큼의 개인적인 수련이 없으면 진정한 도()를 깨우쳐 성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것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지인, 신인, 성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인은 나를 세우지 않고(참 나를 알고있다), 신인은 내세울 공덕이 없고(우주를 바꾸어도 내가 했다는 생각이 없다), 성인은 내 일(명예)을 추구하지 않는다.

 

소요유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막고야 산의 신선처럼 되기 위해서는 참 를 찾는 것을 우화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알기 위해서는 참 의 세계 바깥을 알 필요가 있다.

 

의 바깥 세계는 에고, 나 자신의 감각의 세계를 말한다. 오감이 존재하고 개념으로 존재하고 너와 나를 구분하는 세계를 말한다. 에고의 세계에서는 나와 남을 구분 하게 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한다. 에고의 세계는 모두 음양과 같은 2원성의 세계이다. 그러나 참 의 세계는 이러한 2원성이 없이 절대적인 세계인 것이다. 음과 양의 균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 우화로 소개되는 혜시와 장자의 일화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에고의 세계에서 나오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이 참 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우화에서 혜시에게 쓸모없던 나무가 장자에게는 즐거운 소요유를 할 수 있는 쓸모있는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에고의 더 깊은 곳의 참 에게는 쓸모 있지도 없지도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명상을 하다가 오늘 한 일이 옳다, 그르다가 떠오르면 에고의 상태(현상계)이고 옳고 그름이 없는 모르는 상태(절대계)가 떠오르면 그것이 참 의 상태 인 것이다. 정치로 보면 진보의 입장에서는 보수가 보이지 않고 보수의 입장에서는 진보가 보이지 않는 것이 2원성의 세계이고 , 에고의 세계이고, 현상계의 세계이다. 여기에서 그냥 백성의 입장이 되면 참 의 세계, 즉 절대계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중요하지 않다. 양쪽다 보이는 것이다. 의 세계를 찾아내고 나의 정신의 세계(의 세계)를 나의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소요유가 보여주는 도() 이다.

 

 

 

 

3.    제물론(齊物論)

 

 소요유에서 참 를 찾았다면 사실상 제물론은 매우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소요유에서 말했던 것처럼 참의 세상에서는 모든 물론(物論)은 가지런 하다는 것이다. 즉 모두 같다는 것이다. 첫 우화에서는 소리라는 것을 주제로 제물론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소리는 사물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데 사실 그 소리의 본질은 하나일 뿐이다. 천만 가지의 구멍을 통해서는 천만 가지의 소리가 나오게 되지만 결국 그 소리를 나오게 하는 참는 누구인가를 반문 하고 있다.


본문을 잠시 읽어보자.

 

모든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저것에서 보면 저것이 보이지 않지만 이것에서 보면 저것이 저것인 줄 압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으며,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습니다. 저것과 이것이라는 대립이 없는 것을 일러 도의 지도리라고 합니다. 지도리라 함은 비로소 회전의 중심에서 무한한 변화에 대응하는 점입니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무한한 변화의 하나이 기 때문에 참 를 붙잡지 못하면 그 논쟁의 끝이 없습니다. “

 

위 문장은 소요유에서 설명한 참 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참 를 표현하기 위해서 지도리 라는 것을 비유하였는데 지도리는 문을 열고 닫을 때 그 문을 걸어 회전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 변화 가운데의 변하지 않는 점을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참 인 것이다. 에고의 세계에서는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 삶과 죽음으로 분별하게 되는데 그것을 넘어 참 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우화로는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있다. 조삼모사는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화를 내거나 기쁨을 느끼는 마음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 것 또한 옳고 그름에 치우친 에고의 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인은 옳고 그름이라는 것을 조화롭게 할 수 있도록 참 의 세계, 자연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세계로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자 내편 제물론에서는 여러 우화를 보여주면서 참 의 세계가 아닌 에고의 세계, 즉 현상계의 세계가 얼마나 무수히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것을 쫓아다니는 것은 한 마디로 헛되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의 세계는 절대의 세계이며, 그것은 경계가 없고, 정해진 기준이 없으며 옳고 그름 이라는 분별이 없는 성인의 경지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물론은 호접지몽(胡蝶之夢)으로 그 가르침을 마무리 합니다.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장주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유유자적 하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자신은 장주였습니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것인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분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만물의 변화인 물화(物化)라고 합니다.”

 

 

호접지몽은 다양한 콘텐츠에서 차용되어 많이 사용되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속 뜻을 알기가 어려운 말이다.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참 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접지몽 에서도 장주와 나비사이의 분별을 만물의 변화속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것은 에고의 세계가 무한하며 끊임없이 변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참 의 세계로 돌아가 만물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상태를 우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시간 날 때 계속 비교하여 분석해볼 계획이다. 장자의 이론은 참 ''를 중심으로 제왕으로의 길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 개혁적 사상가를 무위자연 하면서 속세를 떠난 모습으로 설명하는 책들이 많다. 장자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매우 공격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속세의 헛됨을 밝히고 개혁을 하기 위한 개인적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번에는 내편 전체를 묶어서 한 번에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공학적으로 응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